하루 일기
의식의 흐름 24. 4.24 / 02:14
지난달 부모님 오신 이후부터 집안 청결 상태 양호 1년 넘게 푸욱- 쉬던 밥솥 가동 중 오랜만에 머리 쓰려니까 하나도 안 들어옴 뇌 주름에 wd-40 뿌리고 강중유 윤활유로 관리 요망 파리지옥 화분 하나를 들여놨는데 바보들인지 날파리를 하나도 못 잡는다 가끔 먹이 주듯 내가 잡아서 입에 넣어주긴 하는데 그러면 너네는 하는
하루 일기
지난달 부모님 오신 이후부터 집안 청결 상태 양호 1년 넘게 푸욱- 쉬던 밥솥 가동 중 오랜만에 머리 쓰려니까 하나도 안 들어옴 뇌 주름에 wd-40 뿌리고 강중유 윤활유로 관리 요망 파리지옥 화분 하나를 들여놨는데 바보들인지 날파리를 하나도 못 잡는다 가끔 먹이 주듯 내가 잡아서 입에 넣어주긴 하는데 그러면 너네는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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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부터 시작한 짧은 단기 알바를 마쳤다. 일하는 동안은 지독한 피로로 퇴근하자마자 드러눕는 생활이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랜만의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같이 일하는 누구에게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고 어색한 로봇 같은 모습을 보였다. 주어진 대사와 반복된 행동을 하면 되었으니 로봇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활이 끝난 지금 나는 매우 공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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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버렸다. 1. 지난주 금요일 오후 늦게 일어나 씻고 세탁소에서 정장을 찾아왔다 2. 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었다 3. 노래방에서 동생의 축가를 부르고 영상으로 남겼다 4. 집으로 돌아와 집을 치웠다 5. usb에 사진과 영상과 메모장을 넣고 책상에 올려 두었다 6. 밖에 나와 정해둔 곳 근처에서 소주와 국밥을 먹었다 7. 편의점에서 작은 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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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움은 평범한 삶 속에서 일어난다. 마치 지금 지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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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벽이요 방패이자 나의 집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경계로 나의 무능력함을 감추는 핑계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감정으로 그것은 작용한다.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은 사람은 없다. 더욱이 힘이 빠지는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내가 바뀐다는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가능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일이다. 어떠한 이유도, 동기도 이를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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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고향 친구가 머물렀다. 간만에 기분이 좋았나 보다. 말이 많아졌다. 예전처럼 장난과 농담을 했다. 오전에 일어나 끼니를 챙겨 먹었다. 쓰레기장 같던 집을 함께 치웠다. 땀이 나도록 노래를 불렀다. 꽤 먼 외출도 했다. 그리고 친구가 갔다.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시 적막과 고요가 찾아온다. 나도 모르게 들떴던 감정을 추스르고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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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른 아침에는 눈이 왔다. 창문 밖 소나무가 흔들리는 것이 마치 수세미로 보였다. 솔잎 수세미가 하늘을 닦으면 높은 곳에서부터 비누거품이 흩날렸다. 동이 트자 이윽고 빗소리로 바뀌었으나 이는 낡은 해가 새해로 지나가는 과정이었으리라. 기다렸는지 오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를 24년도가 공기와 함께 흘러들어오고 시끄러울 세상 밖과 다르게 방 안은 조용한 노래와 담배와
하루 일기
글에 앞서 내용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기억나는 대로 적었음을 밝힌다. 1. 강원도 동해의 한 병원에서 1997년 2월 2일 새벽에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광명시로 와 유년기를 보낸다. 7세 이전의 기억은 없으나 병설 유치원으로 가는 바람에 어린이집에서 졸업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2. 경기도 광명, 경남 연립 (5세~11세) -> 그 시절 엄마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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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쯤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많이 아프니 전화를 드리라는 내용이었다. 연락해 보니 이미 일주일간 앓았던 장염과 겹쳐 꽤 고생 중인 듯하였다. 일도 쉬고 계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크고 작은 병치레가 많았다.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더불어 광명시에서는 목이 부어 입원까지 하셨었고, 강릉에 와서는 원인 모를 가려움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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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능 날이었다. 아니, 어제였지.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들려 늦은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볼 수밖에 없는 그런 날. 나의 책상은 창가에 있고 그 틈으로부터 차가운 외풍이 새어 손을 시리게 만든다. 때문에 옷을 걸치고 이불을 담요처럼 덮고 있는 금요일의 새벽. 맥주를 한잔했더니 도대체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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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집에 있었다. 시골에 내려가지 않은 건 몇 년 만이다. 앞으로 가족들을 몇 번이나 더 보겠냐만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도 피곤한 일이며 눈에 밟히고 망설여지는 감정은 가라앉은지 오래다. 친구들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래도록 느낀 불안함은 이제 편안함이 되었다. 그러니 기대라던가 걱정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모두 불필요하다. 나 또한 그들에게
하루 일기
요 며칠 하여 창문이 부서질 듯한 폭우가 잦다. 창틈으로 새는 바람도 꽤 선선해진 9월의 중순이다.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일말의 걱정은 도무지 없앨 수 없나 보다. '이렇게 지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삶의 미련일까, 미루어둔 정리에 대한 조바심일까. 그토록 빠르게 흐르던 시간의 속도는 많이도 무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