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조각
불안과의 불완전한 안녕 26.03.14 / 20:24
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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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하루 일기
신정이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다. 일전에 독서모임의 누군가 추천을 해준 ‘나바호‘라는 카페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외부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된 건물, 서부시대와 인디언이 떠오르는 장식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 연인들인 듯 보였다. 버터크림라떼를 주문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글조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애써 드러낼수록 오해를 키운다. 마치 의도치 않은 일을 망가뜨린 것처럼.
글조각
삶의 불꽃은 일종의 최면을 건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우울해진다니. 실로 저주이다. 나는 끝없는 저주에 목메고 캑캑거리다 죽을 운명이다. 그것은 필연이며 끊을 수 없는 굴레이다. 다른 이의 행복을 해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글조각
저를 죽여주세요. 스스로 죽기에는 너무나도 겁이 많습니다. 가족들에게 멀쩡한 얼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기기증을 해야 합니다. 꽤나 어렵겠지만 상흔이 없게 부탁드립니다. 요청이 많지요?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아무 잘못도 아닙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을 탓하지 말라 글을 남기는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잠시만
하루 일기
일전의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사회성과 인격의 문제이다 분명히. 모두는 웃고 떠들고 즐거운 분위기이지만 물과 기름이 섞이지 못하는 것처럼 도저히 하나로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들 만류하지만 그것을 허울 좋은 넉살에 불과하다고 괜히 여긴다.
하루 일기
아~~~ 죽었어야했다. 행복이라던가 무난한 삶은 하등 쓸모없다. 아니, 사치이다. 없어도 되는 것을 알지만 굳이 살려두는 것을 좋아하는 악취미가 세상엔 있나 보다. 무슨 의미가 있고 필요가 있길래.
즉흥적이며 깊이 없고 불규칙적인 기록의 산물,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투정
얼룩이 아른거리는 어지러운 수정체. 활자를 담지 못하는 눈동자. 너는 무엇을 보고 있니. 정말 원하는 것을 보고 있는 거니. 불수의적 움직임에 편승하여 끌려가는 중이니. 두 눈을 후벼파고 맹인으로 살아가면 오히려 나을까. 나의 시선, 나의 의식, 나의 생각 아무리 닦아내어도 도무지 뿌연 백탁이 사라지지 않는 나의 눈동자.
다가가야 한대도 그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앞으로도 무엇을 이루기는 불가하다는 말과 같다. 군중 속에서 나는 다시금 웅크린다. 내 존재의 필요성이 옅어지는 순간이다. 별일 없던 몇 달은 본인을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고약한 속내를 한차례 끓여 응어리지게 할 뿐이었다.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또 다른 거죽을 한 꺼풀 뒤집어쓸 뿐이다. 이제는 여분의 거죽조차
우울은 마치 먼지와도 같아서 아무리 떼어내려 하여도 몇 개의 조각은 항시 붙어있기 마련이다. 우울이 먼지와 다른 점은 좀처럼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그것이 누르는 무게는 실로 상당하다.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든지 깔아 누르려는 무시무시한 공포. 나는 그것을 참 두려워한다. 그리고 녀석이 조만간 찾아오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찬장의 컵들이 달그락거린다.
오래전 그리고 근래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쪽이 없음을 당연시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보서라도 혹은 성격상의 이유로라도 말이다. 하나 최근 들어 그 생각이 미묘히 일탈을 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목이 마른 사막의 모래에 내 마음을 비유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가치관의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알 수 있는 사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 그리고
12월은 다음이 없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달이다. 나는 아직 여기에 머무는데 말이다. 나이라던가 경험이라는 것들은 쌓지지만 그것이 꼭 시간과 비례하지는 않기에 다른 이들과 나는 조금씩 아니, 꽤 큼직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중이다. 수많은 초침들이 지나간 후 보일 미래는 여전히 미지수이나 내 모습이 환하게 웃기를 바란다. 비록 끝없는 바닥을 향해 머리를
버스 구석에 노란 은행잎 몇 장이 있다. 승객의 발걸음을 뒤쫓다가 길을 잃었나 보다.
카페 창가에 앉았다. 찻잔 안에 하늘과 흔들리는 나뭇잎이 보인다. 가만히 응시하니 그 평화로움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차가 줄어들수록 평화의 세계가 사라져 간다. 아쉬운 마음이다.
단풍이 들고 은행이 떨어지는 것은 올해의 끝을 고하는 시한부 선고일까. 정신과를 다니고 약을 복용하지만 이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안다. 한 모금의 담배연기와 한 모금의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안정과 불안정의 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그 중간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티를 내버려두고 살갗을 파고드는 열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가올 미래를 그리는 몇 가지의
아침의 소변 계획 24. 9.cell파일 다운로드 <한 달간의 보고> 우수: - 양호: 이불 정리, 평정 부족: 독서/영화, 산책, 금연 모든 게 무너졌다. 지속할 의미도 상실했다. 아침의 소변 계획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한다.
1) 5개월 남짓. 한 계절과 절반. 더위로 점철된 기다란 여름 동안 변화를 꾀했으나 다시금 돌아온 나의 제자리. 인간의 본성은 쉬이 바뀌지 않나 보다. 무언가를 깨달은 양 여기저기 떠벌린 주제넘은 말들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2) 2주 전쯤 되었을까. 큰 대교의 중턱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아침이었다. 얼마쯤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말을
이상
불금이다. 6시간 전에는 그랬지. 지금은 비 오는 토요일의 새벽이지만. 오래간만에 소주 페트 한 병을 비웠다. 나름대로 긍정의 무언가로 바뀌어보고자 한 최근의 몇 개월. 날씨의 영향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연탄을 피웠던 날도 첫눈이 오던 날이었던걸.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니 새삼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시작부터 급작스러웠던 금연도 그 목적성을 생각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