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자서전 23.12.10 /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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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내용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기억나는 대로 적었음을 밝힌다.

1. 강원도 동해의 한 병원에서 1997년 2월 2일 새벽에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광명시로 와 유년기를 보낸다.

7세 이전의 기억은 없으나 병설 유치원으로 가는 바람에 어린이집에서 졸업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2. 경기도 광명, 경남 연립 (5세~11세) -> 그 시절 엄마와 나는 동네 주민들과 꽤 친하게 지냈고 특히 아랫집 아주머니와 교류가 많았다. 아랫집 아저씨는 서커스 단원을 하였으나 사고로 인해 허리를 다쳐 곱사등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엄마는 외발자전거를 사주셨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라디오 듣는 걸 매우 좋아하셨다. 때문에 항상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벌레들을 아주 좋아해서 집 앞에 있던 화단에서 콩벌레와 지렁이, 그리고 귀뚜라미들을 거리낌 없이 가지고 놀았다. 때로는 그것들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한 번은 동네 친구, 형들과 도덕산을 올라갔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몰랐는지 오랜 시간 귀가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실종 신고를 했고 스피커 방송으로 나와 동생을 찾는 일이 있었다. 친구와 불장난을 자주 했다. 하수구 안에서 동전을 찾아 문방구에서 성냥을 산 뒤 이것저것 태우곤 했고 우리 집 구석에 버려진 텐트와 종량제 봉투에 불을 질렀었는데 자욱한 연기를 본 옆 건물의 아주머니가 신고하여 119가 출동했다. 나와 친구는 바로 친구 집으로 도망갔으나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어느 날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한 새장에 있는 병아리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을 훔쳐 집에 왔을 때 어머니가 어디서 가져왔냐고 물었고 사실을 말한 후 엄청 맞았다. 그리고 원래 자리고 돌려놓았던 일이 있다. 책을 좋아했다. 만화책뿐 아니라 줄글로 된 책들도 많이 읽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말부부셨다. 아버지는 타지에서 건설 일을 하셨으므로 주중엔 항상 집에 없으셨다. 때문에 주말에 오셨을 때에야 나와 동생은 아빠와 목욕탕에 가거나 부모님과 서울 근교로 여행을 갔었다. 나는 그것들을 참 좋아했고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아빠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참 슬퍼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시다는 건 두 분이 다툴 수 있다는 것이었고 주말마다 부부 싸움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미용사셨던 어머니는 이후에도 미용실에서 일하셨고 나와 동생은 종종 그 미용실에 놀러 가 꽂혀있던 만화책들을 읽곤 했다. 그 당시 메이플스토리가 한창 유행했었다. 나는 그것을 매우 하고 싶었지만 뚱뚱한 모니터의 낡은 컴퓨터로 인해 항상 디스크 조각 모음과 디스크 정리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메이플스토리 예상 다운로드 시간은 몇 년이 넘어갔었고 그래서 나는 친구 집에서 친구가 하는 게임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어린 나는 밝고 까불대는 성격이었다. 여느 날처럼 놀이터에서 놀다가 동네 형에게 모래를 튀기며 장난을 쳤고 화가 난 그 형은 내 머리를 잡아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았다. 그때 터진 입술은 아직 흉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나를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했다.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좋아했으나 방에 박혀 연습한 횟수를 지워야 하는 피아노는 나에게 맞지 않았었다. 아빠는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우리 가족과 아랫집 아주머니네가 집 앞에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구워먹을 때면 항상 집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와 연주를 하셨다. 20살 이전까지 나는 외가와 교류가 잦았다. 특히 광명시에 있을 때 외할머니 댁에 자주 갔었는데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마다 차 뒤창에 매달려 잠이 들기 전까지 울었었다.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나 보다. 초등학교 4학년의 여름방학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외할아버지가 오셨었다. 중간의 기억은 없으나 저녁으로 팔도 비빔면을 먹고 비 오는 다음 날 작은 외할아버지의 차를 탄 이후 나는 강릉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아주 이사하여 전학을 오게 된 것임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으며 어릴 적 친구들은 그 이후로 연이 끊겼다.

3. 강원도 강릉, 남산 삼익아파트 -> 4학년 2학기에 전학 후 알게 된 몇 명의 친구 중 지금까지 친한 친구는 최주영이다. 그리고 김민석이라는 친구. 그렇게 셋이 초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동네에서 캐치볼을 하거나 피시방을 같이 다녔던 것, 그리고 친구의 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웃음이 터져 코로 면이 나왔던 것들. 강릉에 와서도 나는 태권도를 여전히 했었는데 한겨울 민석이와 태권도를 땡땡이치고 얼어붙은 남대천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동네 야산에서 눈덩이 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엄마에게 그 사실을 걸려 엄청 혼났던 것이 기억난다. 강릉에 오고 어머니는 마트 일을 하셨다. 아버지도 강릉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주말부부가 아니었다. 싸움이 잦아졌다. 집에 있던 정수기가 부서질 정도로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했었다. 두 분이 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몰아붙이셨으며 이후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우셨고 나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다. 머리가 길면 베란다에서 신문지를 덮고 엄마가 머리를 잘라주셨다. 방학이면 나, 동생, 아빠 할 것 없이 파마도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파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고등학교 들어가고부터 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도 젊었던 시절이라 나에게 게임을 알려준 적이 있다. 던전앤 파이터라는 게임인데 그때 정해주신 아이디를 여전히 쓰고 있다. 아직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동네 학원에 다니며 학원 친구들과도 꽤나 친하게 지냈다. 특히 중학교를 대비하는 수업을 끝내고 나면 돌아가는 길에 함께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어머니는 유행을 꽤 민감하게 받아들이셨다. 당시는 기타가 유행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타 학원에 데려가셨고 그때부터 나는 음악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 손에 땀이 많아 기타줄이 자주 녹슬었다. 학원에서 진행한 행사의 일환으로 시내의 작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4. 남산 현대 -> 우리 집은 2년 계약 전세를 전전하는 상황이었고 때문에 앞으로도 몇 번의 이사를 더 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까지 친했던 민석이가 꽤 먼 중학교에 가는 바람에 멀어지게 되었다. 아버지하고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왕복 50km가 넘는 외할머니 댁으로 다녀왔다. 힘들기는 했으나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중학교 2학년 중반까지 나는 수학과 과학을 매우 좋아했고 또 잘했다. 100점을 맞을 정도로. 그러나 사춘기가 온 이후로 모든 학업에 권태로워졌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기분이 마냥 좋다가도 급격히 우울해지고는 했다. 친구들이 당황해할 정도로. 당시는 한때의 사춘기 문제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조울증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상진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껏 배워온 기타를 통해 친해졌다. 그 친구에게 내가 기타를 가르쳐 주었고 추후 밴드부를 결성한다. 마땅한 연습장소가 없어 친구가 다니던 교회를 빌렸고 이 때문에 교회에 잠시 다니게 됐다. 일요일마다 늦잠을 자서 예배에 자주 불참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강릉이기에 밴드부 친구들과 교회의 눈을 함께 치우기도 했다.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지만 끝내 친해지거나 고백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으므로.

5. 제일고 사거리 -> 처음으로 동생과 따로 방을 써본다. 그러나 그 이후로 다시 동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집이 너무 춥고 더웠다. 이때까지 함께 연습한 밴드부원들과 중학교 3학년 마지막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한다. 친구들은 꽤 인기가 있었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6. 대림아파트 -> 고등학교 시절이다. 학교 동아리였던 관악부에 입부하고 학교 축제를 비롯한 많은 행사를 다녔다. 이후 악장까지 했다. 아버지에게 대들어 대판 맞고 가출을 했었다. 심한 부부 싸움이 있었다. 찌개가 들어있던 뚝배기가 박살 나고 식탁 위에 있던 유리가 박살 났으며 엄마가 맞았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경찰이 왔고 나와 동생은 이모집으로 도망갔다. 이혼 이야기가 나와 친구 주영이와 그에 대해 고민 상담을 했었다. 주영이와 광고쟁이가 되겠다며 관련 서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계발서를 탐구했다. 기타 제작자에 관심을 가졌으나 다한증을 핑계로 포기한다. 혼자 서울에 재즈 공연을 보러 다녀오고 기타 수리를 위해 부산에 가기도 한다.

고3 때 주말 자습을 째고 휴대폰을 둔 채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가 이후 담임에게 뒤지게 혼나고 5시간이 넘는 벌을 섰다. 음악을 통해 친해진 여자 남자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수능을 볼 당시 국어국문학과를 지망했으나 불가능함을 알고 언어치료학과에 진학한다. 해가 바뀌고 술을 마시러 갔다가 빠른이라 혼자 퇴짜를 맞는다. 졸업 후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과 한라산 등반을 한다. 내일로 기차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7. 대구, 대학 기숙사 및 자취 -> 여초과였으므로 남자 학우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다. 인당 박물관 서포터즈 1기로 활동하며 도슨트 진행이나 전시 준비 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좋은 기억을 만든다. 이때부터 미술관을 자주 다니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으나 친해지지 못했다. 이유는 동일하다.

8. 입대 -> 스스로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군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적어간 연락처는 많았으나 연락해도 될지 반갑게 맞아줄지 자신이 없어 차마 연락하지 못한다. 급격히 우울함을 느끼고 지금 블로그에 남아있는 글들 적기 시작한다. 인천 동검도와 제주도에서 파견 복무를 한다. 4박 5일 휴가 간 제주도 자전거 종주를 한다. 전역 후 아버지 일터에 찾아가 전역 보고를 한다.

9. 복학 및 자취 -> 인당 서포터즈 4기로 들어갔으나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우울함이 악화된다. 집에서 연탄을 태우고 칼로 자해하게 된다. 어떤 날은 담배로 손목을 지졌다. 땅끝마을 해남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밤에 바다에 들어가려 했으나 겁이 나 포기한다. 남자 학우들과 크리스마스 맞이 여행을 한다. 유일한 면허 취득자였기에 운전을 하게 되고 이후 친구들과 잦은 드라이브 여행을 한다. 이 시점에 박태민, 최지윤, 박성익과 엄근진이라는 이름으로 가깝게 지낸다. 졸업이 다가올 즈음 이세윤과 멀어진다. 내 성격 및 태도의 이유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좋아하는 누나가 생겼고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진전이 있었다. 시험기간에 함께 공부하고 연극을 보러 다녀오거나 자취방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고백하지 못했고 그 후로 급격히 멀어졌다.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많은 후회가 남는 선택이다.

10. 졸업 및 취업 -> 일산으로 이사한다. 첫 집은 역 근처의 오피스텔이었는데 춥고 해가 들지 않아 최악이었다. 홀로 경기도에 있었으므로 친구들을 보기 위해 다른 지역들을 돌아다닌다. 즐거우나 꽤 피곤한 일이었다. 직장에서 가까워진 동료들과 가끔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직업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증폭된다. 왼쪽 팔에 끊어진 교수형 밧줄의 문신을 한다. 친구가 타투이스트 수료과정에 있었으므로 그 연습을 위한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선택만 문양이기도 했다. 1년 후 전셋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간간이 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다녀온다. 상진이의 권유로 동네 오픈 채팅방 들어가 사람들과 교류하였으나 좋지 않게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은 짧은 만남임에도 많은 정신적 지지를 해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한동안 퇴근 후 매일 호수 공원에서 달리기를 했으나 곧 그만둔다. 친구들이 가끔 놀러 오긴 했어도 3년 동안 그렇다 할 사람 없이 생활한다. 월급에 대한 불만족을 둘러대고 퇴사한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의 휴식을 가지고 취업하겠다 말했지만 그러할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이후 사람들과 연락하는 빈도가 적어진다. 몇 년 동안은 명절마다 외가와 친가를 번갈아 다녀왔으나 뜸해진다. 날짜가 무감각해질 정도로 잠과 일어남이 일정치 않으며 생활의 대부분에 휴대폰을 보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한다.

-번외-

어린 시절 주말부부였으므로 어머니가 양육과 집안 살림에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였기에 주로 이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 그에 대한 타깃이 나와 동생이 되었지 않았을까.

두 분이 다투거나 언성이 높아지면 심장이 뛰고 둘 사이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부부 싸움 때마다 나에게 중재를 요구하며 상황을 판단해달라 했던 강요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일이지만 종종 지나친 폭력이 가해진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나의 성격을 그들의 탓으로 돌렸지만 건강하게 생활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이 문제로 어머니와 이야기 나눈 적도 있으나 그럴 때마다 날카롭게 어머니 탓을 했던 것을 후회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몇 번이고 그 당시에 대해 사과를 하셨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가족들과 연락하고 있지 않는다. 몇 주 전 아버지가 전화 오셨는데 그 너머로 어머니가 본인을 자책하며 울고 계신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나는 더 이상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이며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남긴다.

그리고 내 선택은 그것들과 전혀 상관없다.

모든 마음의 짐을 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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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의 불완전한 안녕 26.03.14 / 20:24

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첫 날의 방문지 26.01.01 / 20:32

신정이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다. 일전에 독서모임의 누군가 추천을 해준 ‘나바호‘라는 카페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외부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된 건물, 서부시대와 인디언이 떠오르는 장식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 연인들인 듯 보였다. 버터크림라떼를 주문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