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기

하루 일기

7월의 끄트머리에서 23. 7.29 / 23:45

날이 무척 덥습니다. 매미는 귀가 멍하도록 울고,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서 발길을 서두릅니다. 공원 한편에서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나무를 올려다보는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 이를 바라보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산책을 하는 중년부부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네요. 차들은 하나같이 창문을 닫았습니다. 아마도 에어컨을 틀고 있지 않을까요. 오래간만의 외출을 합니다. 세탁소에 수선과 세탁을 맡기고,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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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적 자아성찰 23. 7. 6 / 11:28

언젠가 친구와 우생학에 대한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누는 기준과 그 적용 범위, 그리고 예외 조항들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꽤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분류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테지만 스스로에게 씌우는 열등함의 항목들과 삶의 지속에 대한 무의미한 태도가 진단 기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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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23. 6.26 / 20:13

퇴사를 했다. 예정된 마지막이기는 했으나 막상 나와보니 무언가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분을 알고 있다. 전역. 전역날이 정말로 이랬지. 퇴사일까지도 끝끝내 미뤄 놓은 일지와 종결 보고서의 작성을 새벽녘까지 몰아치고 나서야 비로소 약간의 실감을 했다. 누군가와는 가식적으로, 누군가와는 무덤덤하게,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다한 아쉬움으로 나눈 작별 인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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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st (대조) 23. 6.18 / 18:00

6월. 한 해의 절반. 이 중 3개월은 잠을 잤을 것이다. 넘쳐났던 오전의 시간들은 그저 피곤함을 풀기 위해 남김없이 사라졌다. 어제만 해도 그렇지. 늦은 점심을 먹고 18시가 갓 지난 후부터 자정이 넘어서 잠시 눈을 뜨고는 다음날 9시가 될 때까지 내리 잠을 잤으니. 일상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느긋한 행동들 대신 빠듯하게 닥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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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하나, 반갑지 않은 하나 23. 5.29 / 03:55

고등학교 친구가 하루 머물다 갔다. 누군가 놀러 오면 늘 하는 일은 똑같다. 근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들렀다가 집에서 술과 대화. 다음날 차를 빌려 드라이브. 그러고는 보내주는 것이다. 아, 이번에는 하나가 달랐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도 보았지. 지금 나는 적막하고 텅 빈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있다. 한차례 지나간 소란함은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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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성당 앞에 앉아 / 23. 5.15 23:56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기억을 미루어보니 2개월 만이다. 목적지는 공세리성지. 충남 아산의 한 마을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당이다. 시간이 늦어 본당은 닫혀있었지만 주변의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 나 홀로 있는 느낌. 결국 그것이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집안에 박혀 눅눅한 이불과 뒹구는 것은 충분히 누렸기에 더 이상 있다가는 정신이 나갔겠지. 날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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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내리는 눈 23. 5. 1 / 20:46

날이 꽤 따뜻하다. 어제는 고양국제꽃박람회에 다녀왔다. 손을 잡은 연인, 뛰어노는 아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노부부 모두가 즐거운 일요일의 오후를 보내고 있고 나는 그 사이를 거닐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조금은 강한 바람이 애써 만진 머리를 흩트려놓지만 그마저 이 행복한 장면의 한 조각이 된다. 눈을 뜨니 하늘에 하얀 꽃가루가 흩날린다. 봄에 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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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에 앞서 23. 4. 6 / 20:56

꽤나 긴 봄비가 내린다. 때이른 개화 탓에 이미 바닥은 분홍색 점묘화가 한가득이다. 어느새 4월 중순이라는 믿기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 3일간의 비로 잠시 멈춘다. 직장을 옮기려 한다. 어쩌면 지루한 일상의 고마움을 낯선 도전으로 앙갚음하려는 마음이리라. 걱정과 두려움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낙관하고 안일한 내 모습이 나를 오래도록 집에 가둘지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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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기억과 짧은 돌아봄 22.12.26 / 23:54

[2013년 여름, 강릉 어느 친구의 집] 왜소한 체격의 남자아이가 기타를 들고 제이레빗의 <talkin' bout love>를 연주한다. 둘러앉은 친구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뭐가 재밌는지 실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다. 맞은편의 소년과 소녀는 이후 연인이 될 예정이며 옆자리의 여자아이는 먼 훗날에서야 무릎을 맞댄 남자아이가 알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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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고독 22.11.26 / 22:46

기분전환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즐거워야 하지만 앉아 있을수록 내가 보잘것없음이 뚜렷해져만 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들어가야 하는 구덩이를 깊어지게 한다. 구겨지는 병뚜껑이 늘어갈수록 스스로가 병뚜껑이 되는 느낌은 강하게 밀려온다. 난 행복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존재다. 순간의 즐거움은 동튼 후의 안개처럼 빠르게 사라지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