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하루 일기

우생학적 자아성찰 23. 7. 6 / 11:28

언젠가 친구와 우생학에 대한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우월함과 열등함을 나누는 기준과 그 적용 범위, 그리고 예외 조항들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꽤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분류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테지만 스스로에게 씌우는 열등함의 항목들과 삶의 지속에 대한 무의미한 태도가 진단 기준에

하루 일기

퇴사 23. 6.26 / 20:13

퇴사를 했다. 예정된 마지막이기는 했으나 막상 나와보니 무언가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분을 알고 있다. 전역. 전역날이 정말로 이랬지. 퇴사일까지도 끝끝내 미뤄 놓은 일지와 종결 보고서의 작성을 새벽녘까지 몰아치고 나서야 비로소 약간의 실감을 했다. 누군가와는 가식적으로, 누군가와는 무덤덤하게,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다한 아쉬움으로 나눈 작별 인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일기

Contrast (대조) 23. 6.18 / 18:00

6월. 한 해의 절반. 이 중 3개월은 잠을 잤을 것이다. 넘쳐났던 오전의 시간들은 그저 피곤함을 풀기 위해 남김없이 사라졌다. 어제만 해도 그렇지. 늦은 점심을 먹고 18시가 갓 지난 후부터 자정이 넘어서 잠시 눈을 뜨고는 다음날 9시가 될 때까지 내리 잠을 잤으니. 일상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느긋한 행동들 대신 빠듯하게 닥쳐야지

하루 일기

반가운 하나, 반갑지 않은 하나 23. 5.29 / 03:55

고등학교 친구가 하루 머물다 갔다. 누군가 놀러 오면 늘 하는 일은 똑같다. 근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들렀다가 집에서 술과 대화. 다음날 차를 빌려 드라이브. 그러고는 보내주는 것이다. 아, 이번에는 하나가 달랐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도 보았지. 지금 나는 적막하고 텅 빈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있다. 한차례 지나간 소란함은 어느새

글조각

수엽지간적광_樹葉之間的光 (나뭇잎 사이의 빛) 23. 5.18 / 03:37

바람이 불자 나뭇잎은 마치 신호가 끊긴 TV처럼 지지직거리고 그 찰나의 틈새를 통과하는 빛이 알 수 없는 모스부호를 보낸다. 나무들의 대화일까. 어쩌면 혼잣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 깜빡임을 그저 응시한다. 1초 . 2초 . . 3초 . . . 시간은 흘렀으나 여전히 지지직거리고 깜빡이는 나무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내가 있다.

하루 일기

불 꺼진 성당 앞에 앉아 / 23. 5.15 23:56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기억을 미루어보니 2개월 만이다. 목적지는 공세리성지. 충남 아산의 한 마을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당이다. 시간이 늦어 본당은 닫혀있었지만 주변의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 나 홀로 있는 느낌. 결국 그것이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집안에 박혀 눅눅한 이불과 뒹구는 것은 충분히 누렸기에 더 이상 있다가는 정신이 나갔겠지. 날씨가

하루 일기

봄에 내리는 눈 23. 5. 1 / 20:46

날이 꽤 따뜻하다. 어제는 고양국제꽃박람회에 다녀왔다. 손을 잡은 연인, 뛰어노는 아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노부부 모두가 즐거운 일요일의 오후를 보내고 있고 나는 그 사이를 거닐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조금은 강한 바람이 애써 만진 머리를 흩트려놓지만 그마저 이 행복한 장면의 한 조각이 된다. 눈을 뜨니 하늘에 하얀 꽃가루가 흩날린다. 봄에 내리는

글조각

지적과 지적 23. 4.28 / 01:43

자주 지적을 받는 아이가 있다. 본인은 생긴 것도,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 않은데 스스로에게만 날아오는 수많은 지적에 생각이 많아진다. 남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행동들마저 아이에게는 쉽사리 능숙해지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어떤 날은 왜 그랬냐며 타박을 듣기도 한다. 친구와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며 순식간에 변하는 대화에 따라가기 버겁고 같은

하루 일기

낯섦에 앞서 23. 4. 6 / 20:56

꽤나 긴 봄비가 내린다. 때이른 개화 탓에 이미 바닥은 분홍색 점묘화가 한가득이다. 어느새 4월 중순이라는 믿기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 3일간의 비로 잠시 멈춘다. 직장을 옮기려 한다. 어쩌면 지루한 일상의 고마움을 낯선 도전으로 앙갚음하려는 마음이리라. 걱정과 두려움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낙관하고 안일한 내 모습이 나를 오래도록 집에 가둘지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