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기
찰나의 기억과 짧은 돌아봄 22.12.26 / 23:54
[2013년 여름, 강릉 어느 친구의 집] 왜소한 체격의 남자아이가 기타를 들고 제이레빗의 <talkin' bout love>를 연주한다. 둘러앉은 친구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뭐가 재밌는지 실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다. 맞은편의 소년과 소녀는 이후 연인이 될 예정이며 옆자리의 여자아이는 먼 훗날에서야 무릎을 맞댄 남자아이가 알게 될
하루 일기
[2013년 여름, 강릉 어느 친구의 집] 왜소한 체격의 남자아이가 기타를 들고 제이레빗의 <talkin' bout love>를 연주한다. 둘러앉은 친구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뭐가 재밌는지 실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다. 맞은편의 소년과 소녀는 이후 연인이 될 예정이며 옆자리의 여자아이는 먼 훗날에서야 무릎을 맞댄 남자아이가 알게 될
하루 일기
기분전환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즐거워야 하지만 앉아 있을수록 내가 보잘것없음이 뚜렷해져만 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들어가야 하는 구덩이를 깊어지게 한다. 구겨지는 병뚜껑이 늘어갈수록 스스로가 병뚜껑이 되는 느낌은 강하게 밀려온다. 난 행복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존재다. 순간의 즐거움은 동튼 후의 안개처럼 빠르게 사라지므로.
하루 일기
나무가 되고 싶었다.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굉장한 외로움이 함께 찾아왔다. 지금 나는 나무가 되었나. 지금 나는 돌멩이가 되었나. 그냥 놔둬도 잘만 자랄 줄 착각했던 나무는 방 한구석에서 말라가고
하루 일기
이 주쯤 되었나. 거실 등이 나갔다. 이틀 전에는 안방 등도 나갔다. 화장실에 곰팡이가 꽤 늘었다. 널브러진 옷가지들은 단조로운 걸음을 리듬감 있게 만들어주고 눅눅한 이불은 마치 구름 속에 누워 있는 듯 착각하게 한다. 베란다의 재떨이에는 꽁초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며 싱크대 속 그릇에는 새 생명이 탄생 중이다. 현관에는 재활용센터가 개업해 성황리에 오픈을
글조각
좀처럼 하나를 오래도록 하지 못하는 탓에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없다. 마치 점선과 같이 뚝뚝 끊어져 있는 것이다. 뭐라도 진득이 할 만 한데 당최 실선이 되기에는 글렀는지 그러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종이접기에서 점선은 접다, 실선은 자르다를 의미한다. 요리조리 자른 종이는 어떤 모양으로도 될 수 있고 여러 조각으로 나뉠 수 있다. 접기만
하루 일기
가을. 10월의 초입이 되어서야 낮마저 쌀쌀한 느낌을 풍긴다. 얼마 후면 모래시계가 흘러가듯 낙엽이 내리겠지. 그 낙엽은 쌓이고 썩어서 다음 봄의 수많은 생명들에게 양분이 되리라. 얼마나 고귀하고 뜻있는 마지막인가. 살아서는 그늘이 되어주고 황혼에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죽어서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림이 없는 나무. 이름에 '나무 수'가 있으나 어디에도 쓰임이
글조각
죽고 싶다.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이다. 안 될 일이다. 결국 나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지. 참 안타깝다.
글조각
태어난다. 시간이 흐른다. 누군가는 성장하고 누군가는 퇴화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나 어떤 사람에게는 기피의 대상이다. 언제까지고 어울릴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멀어져 있기도 하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다. 누군가 생일을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또한 앞으로 있을 수많은 생일들에 미리 축하를 보낸다.
글조각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들은 온통 땀에 젖었으나 행복해 보인다. 애석하게도 나는 함께하고 있지 않다. 그간의 행실을 본다면 함께하는 것은 도리어 방해가 될 뿐이다. 허나 이는 내 행동의 결과인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한 자의 미소는 아름답고 또 부럽다. 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랐으나 또다시 이뤄내지 못한 스스로를 자조하며 남은 삶을
하루 일기
가을이 코앞이다. 요 근래의 쌀쌀함을 보면 이미 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낄새도 없이 공기는 빠르게 차가워지겠지. 어느새 겨울이 될 것이며 삶은, 길을 가다 쥐여주는 전단지처럼 일 년을 다시 건네줄 것이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퍽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 게으른 나는 좀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런 탓에 앞으로도 꽤나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글조각
술을 마신다는 건 취하기 위해서이다. 숨을 쉰다는 건 살기 위해서이다. 산다는 건 무엇을 위함일까. 삶의 이유를 찾지 않는 것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은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한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누군가의 기록에서 '나'라는 말이 자주
글조각
모두가 각자의 행복을 바란다. 분명 그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며 또한 나는 그것을 희망한다. 한없이 깊은 마음으로 간절하게 그것을 꿈꾼다. 그래야 모든 게 완전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