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고찰 22. 8.24 / 00:00
술을 마신다는 건 취하기 위해서이다.
숨을 쉰다는 건 살기 위해서이다.
산다는 건 무엇을 위함일까.
삶의 이유를 찾지 않는 것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은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한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누군가의 기록에서 '나'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는 게 우울증의 확실한 증거라고 한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나는 나를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나의 정반대에 존재한다.
우울함, 혹자는 차분함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머리카락에 붙은 껌처럼 스스로를 잘라내지 않고서는 떼어낼 수 없다.
처음에는 가장자리부터 시작하겠지만 결국에는 가장 중심을 도려내야만 그것과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며 하고 싶지 않은 수없는 이별을 하면서도 정작 이별을 하고 싶은 존재와는 본인이 산산조각 나야만 가능하다는 역설이 한층 더 가슴을 턱 막는다.
행복은 살아감에 존재하지 않는다.
행여 존재하더라도 희미한 잔향만을 느낄 뿐이다.
그 본모습은 삶의 너머 저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가벼운 손짓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