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고찰 22. 8.24 /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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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신다는 건 취하기 위해서이다.

숨을 쉰다는 건 살기 위해서이다.

산다는 건 무엇을 위함일까.

삶의 이유를 찾지 않는 것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은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한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누군가의 기록에서 '나'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는 게 우울증의 확실한 증거라고 한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나는 나를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나의 정반대에 존재한다.

우울함, 혹자는 차분함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머리카락에 붙은 껌처럼 스스로를 잘라내지 않고서는 떼어낼 수 없다.

처음에는 가장자리부터 시작하겠지만 결국에는 가장 중심을 도려내야만 그것과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며 하고 싶지 않은 수없는 이별을 하면서도 정작 이별을 하고 싶은 존재와는 본인이 산산조각 나야만 가능하다는 역설이 한층 더 가슴을 턱 막는다.

행복은 살아감에 존재하지 않는다.

행여 존재하더라도 희미한 잔향만을 느낄 뿐이다.

그 본모습은 삶의 너머 저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가벼운 손짓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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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의 불완전한 안녕 26.03.14 / 20:24

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첫 날의 방문지 26.01.01 / 20:32

신정이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다. 일전에 독서모임의 누군가 추천을 해준 ‘나바호‘라는 카페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외부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된 건물, 서부시대와 인디언이 떠오르는 장식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 연인들인 듯 보였다. 버터크림라떼를 주문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