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조각
22. 8.19 / 01:00
슬프게도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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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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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누나가 행복해졌다. 나는 다시 우주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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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가슴에는 모래 웅덩이가 있었다. 어떤 것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웅덩이가 말이다. 어느 날인가 한 사람이 다가와 그 웅덩이에 작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용없을 것이라고 푸념하였고 가끔은 물을 주려는 그 사람을 밀치기도 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반드시 꽃을 피울 것이며 더 이상 웅덩이가
하루 일기
어찌할 바 모르는 순간에 눈앞의 내밀어진 손은 그 무엇보다 울컥하고 어떤 것보다 마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도무지 들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말. '화해'란 그런 것이었다. '화해'라. 화해는 서로 간의 갈등과 다툼이 있었다는 걸 가정하지 않는가. 이것은 '용서'였다. 그리고 '기회'
하루 일기
하와이안 셔츠, 주크박스, 손금, 미술관 피아노 연주가 있는 디너쇼, 클라이밍, 부산여행. 왜 그랬을까 누군가를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을 때 느끼게 될 감정들을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없다. 다만 한없이 한없이 사과하고 후회하고 미안할 뿐이다.
하루 일기
끝났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나는 있어서는 아닌 사람이 맞았다. 꾸역꾸역 살수록 실망하고 상처받을 사람이 많아질 뿐이다. 나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지 말자. 몹쓸 행동들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소중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나는 더 이상의 가치가 없는 존재이다. 바보, 병신,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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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랑을 받을수록 오히려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처음에는 이를 데 없이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솟다가도 어느 순간 나를 미워하고 질려 하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다. 과분하다는 생각이었을까. 오래도록 물이 담긴 종이컵처럼 아래서부터 무언가 새어 나와 결국에는 텅 비어버리고 말았을
하루 일기
몇 년 전 친구가 말했다. "너도 너 얘기 좀 해라. 항상 나만 친해지려고 하는 거 같아. 연락도 좀 먼저 하고." 몇 달 전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오빠는 날 사랑하고 있지 않아." 오늘 누군가 말했다. "마음이 거기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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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공부 책을 펴보면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안을 이런저런 색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그림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싫어하는 그림들을 그저 칠해야 한다. 다르게 그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이미 가득 찬 종이들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다. (22. 7.21 / 09:28) 색칠공부 책을 펴보면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자체를 바꿀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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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말했다.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상을 깨야 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계란 후라이가 되고 싶다. 스스로 깨어나서는 병아리가 되지 않는가. 계란 후라이는 누군가 깨어주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맛있는 계란후라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냉장고 구석에 있는 나를 꺼내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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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아있는 존재가 있다. 그는 오래 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오래 살아야 한다. 그러길 바라는 사람이 있기에. 실수가 많다. 그러기에 자꾸만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오래 살 것이다. 그러길 바라는 사람이 있기에. 본인의 의견 따위는 어쨌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럴만하기에. 그럼에도 오래 살 것이다. 그러길 바라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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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구르는 바퀴를 가만히 보면 마치 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도는 것 같다. 그러나 속도를 늦추고 데굴데굴이라는 의태어가 어울릴 즈음 다시 바라본다면 바퀴는 스스로가 이끄는 곳을 향해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한 달 새 자꾸만 날 느리게 하는 사람이 생겼다. 조금만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