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
조병화 - 「고독하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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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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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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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부신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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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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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거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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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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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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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너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네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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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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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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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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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