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 24. 6.11 / 01:08

Share


1. 충동이 든다면 과감히 시도하자.

: 나는 이상한 상징성에 매료되어 만 27세라는 날을 정해놓았다. 물론 기일과 생일을 함께 챙기어 번거로움을

덜 수 있도록 고려한 것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그날에 나는 그다지 죽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날짜라는 구속감을 느껴 원치 않는 발걸음을 했으니까.

2. 철저히 준비하자.

: 넥타이가 끊어졌다. 공교롭게도 팔뚝의 문신처럼. 안일한 준비 때문이다. 조금 더 길고 튼튼한 그런 끈을 준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것저것 임시방편을 사용하다가 술이 깨어 산 채로 걸어 돌아왔다. 사람이 쉽게 죽지않

음은 익히 들어 알 것이다. 당신의 생각보다 조금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3. 온전하기를 바라지 말자.

: 나는 시체가 온전하기를 바랐다. 또한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기를 원했다. 한강에 뛰어드는 것, 모텔에서 연탄을 피우는 것, 기차에 달려드는 것,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 모두가 뒤처리에 많은 인력이 들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시신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교수(絞首)다. 이는 나를 발견할 사람과 추후 시체를 마주할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이는 2번의 문제와 맞물려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따라서 진실로 그것을 원한다면 시체가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채용해야 한다.

4. 정신을 차리지 말자.

: 준비과정은 확실히 하되, 그 진행은 제정신으로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나처럼 끈이 끊어지는 등의 시행착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은 극도로 흥분 상태가 된다. 이를 어지간한 알코올로는 중화할 수 없다. 나는 소주와 위스키를 마셨음에도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던가 그에 준하 는 무언가를 준비하자. 물론 뚜렷한 동기가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5. 앞으로를 기대하지 말자.

: 죽음에 앞서 혹여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자살을 포기한다면 뭔가 다르게 살 수 있을 거 같아.'

글쎄. 많은 케이스가 있기에 단정하지 못하겠으나, 다만 삶을 지속한다고 급격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조금의 사회적 연결망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신의 자살시도를 모를 것이며 만약에

안다고 하더라도 태도의 변화는 없을 테니. (이것은 중상을 입었다거나 소방. 경찰의 구조를 받았다거나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 조언이다.) 당신 또한 자살을 실패하였다고 천지개벽할

갓생을 살 수 있을까. 미약한 발전을 꾀하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주변도 당신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간절히 삶의 너머를 원하던 그 때로.

6. 신중하자.

: 이것은 자살 권장의 글이 아니다. 수많은 고려와 숙고에도 미처 죽지 못한 사람의 글이다.

또한 살았음으로 안도를 느끼고 앞으로를 바라보려 하는 사람의 글일 뿐이다.

Read more

불안과의 불완전한 안녕 26.03.14 / 20:24

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첫 날의 방문지 26.01.01 / 20:32

신정이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다. 일전에 독서모임의 누군가 추천을 해준 ‘나바호‘라는 카페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외부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된 건물, 서부시대와 인디언이 떠오르는 장식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 연인들인 듯 보였다. 버터크림라떼를 주문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