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약속한다 18. 3.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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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존재할까.

이 세상 속에서 그 어떤 상호작용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을까.

과연 누가 나의 필요성을 느끼는가.

내가 현실에서 모습을 감춘다면 얼마큼의 변화가 생길까.

무엇을 위해 굳이 자연적 죽음이 올 때까지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가.

인간존재 하나하나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고 적당한 수명이 있다고 본다.

물론 그 역할의 경중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이 다른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며 몇 살까지 살 것인가.

현재 나의 답변은 '아직 모른다'이다.

나는 스스로 그 한계점 즉, 데드라인을 만 27세로 잡으려 한다.

왜 27세일까.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그냥 끌릴 뿐이요, 왠지 그 나이에 한계를 맞고 싶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생명 영위는 사치이다. 아니, 불필요하다.

덧없는 희망을 외치며 '그래, 나아지겠지.' 따위의 허무맹랑한 김칫국 연발에

하루하루 열등과 허무함을 식사로 때우는 하나의 존재는 뜻한 바를 이루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존재를 방해할 뿐이다.

이런 전자에게도 어떤 영웅적인 혹은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마무리가 있는고 하니,

스스로 뜻하는 그 죽음의 모습을 연출하는 즐거움 가득한

「자살」

최소한의 구성요소로 최고의 걸작을 가능케 하는 자살이다.

아! 기대가 된다. 스물일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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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의 불완전한 안녕 26.03.14 / 20:24

나는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찰나의 기쁘던 순간들이 정말로 찰나에 그치게 될까 하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괜한 짓들로 되려 조심스러워진 지금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것을 허황되게 담아버린 자신에게 가는 불안입니다. 따라서 이 불안을 놓아주어야겠습니다. 나의 불안이 상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첫 날의 방문지 26.01.01 / 20:32

신정이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다. 일전에 독서모임의 누군가 추천을 해준 ‘나바호‘라는 카페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외부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된 건물, 서부시대와 인디언이 떠오르는 장식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 연인들인 듯 보였다. 버터크림라떼를 주문하여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