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소망 17.1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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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비에 약해질 만큼 약해진 사면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안일한 생각으로 그저 지켜만 보던 이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허탈한 표정이 서려 있다.

손을 쓸 수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무력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음...... 죽을까.'

5년을 넘도록 청춘을 바쳐 이 일에 가장 애정을 보였던 순현은 불현듯 죽음을 떠올렸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흙 쏟아지는 소리, 비 오는 소리, 욕하는 소리, 화물차 움직이는 소리가

묘한 화음을 이루고 그 중심에서 작업반장 편 씨가 열정적으로 지휘한다.

"야! 비켜 새끼야. 차 나가야 돼!"

기습적인 호통에 정신을 차려보니 토사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코앞에 와 있다.

그러나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순현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운전기사를 응시한다.

"어어? 야! 죽고 싶어? 비키라고!"

당장이라도 덮칠 듯 돌진할 태세로 웅웅거리는 트럭이 기사의 감정을 드러낸다.

순현은 '죽고 싶어'라는 부분에서 은근히 입꼬리를 올린 것 같다.

탕!

참다못한 운전기사는 팔을 걷어붙이며 차에서 내린다.

순현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멱살부터 잡는 운전기사는 인스턴트커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온갖 욕을 쏟는다.

'아깝네...'

실망한 모습이 역력한 순현은 다부진 팔로 멱살을 잡은 운전기사의 손을 내친다.

"겁쟁이 새끼. 그러니 트럭이나 몰면서 살지."

한마디를 툭 뱉고 무너져 내리는 토산을 향해 걸어가던 순현의 등 뒤로 잘 만들어진 벽돌이 중력을 거슬러

머리 높이에 모습을 드러낸다.

퍽! 퍼억! 퍽!

"죽어! 개새끼야! 네가 뭔데 시팔! 어?"

하늘에서 떨어진 투명함이 땅에서 석류빛 색채로 은은히 번진다.

초점을 잃은 순현의 입술이 들썩거리며 끝나가는 호흡을 내보낸다.

'하... 진작 그럴 것이지.'

질퍽한 흙탕물에 온몸을 맡긴 순현의 주위로 빗방울들이 섬세한 물안개를 자아내고

한 자아의 소망이 이루어진 현장에는 그 갑작스럽고 거칠은 정적만이 배경음으로 채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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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점호를 하며 17.12.20 / ?

아침점호엔 연병장에 나간다. 겨울 특유의 늦은 일출 탓에 여전히 떠 있는 별의 잔재. 잠자리에서 미적거리듯 연붉은 빛이 서서히 번지면 나는 연속된 시간의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곤 한다.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며 가만히 올려다보니 퍽 잔잔하고 은은하기 그지없다. 그러기도 잠시. 곧이어 찾아오는 냉기에 어디에선가 해를 빌려 올 수는 없는지 발을 동동 구르고

By SimKiB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