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3. 2 / 19:32
우연히 퇴근시간이 맞았는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동료 언어 선생님이 왔다.
그러나 나도, 그 선생님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애써 무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
왜일까?
그동안 쌓인 밀쳐냄을 담아두었기 때문일지도.
그 선생님 또한 직장 밖에서 굳이 아는 척을 하며 불편한 퇴근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 둘은 같은 버스를 탔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그 선생님은 서서 원당역까지 갔고 지금은 나 홀로 남은 정류장들을 거쳐가는 중이다.
잘한 건가? 잘했겠지.
내가 먼저 나섰을 때 잘 되는 것은 대부분 없었다.
그저 돌멩이처럼, 나무처럼 가만히 무엇도 하지 않고 있자.
그게 나의 분수이며 주제이다.
한 볼품없는 존재가 꾸역꾸역 생을 연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