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 행군 소감문 17. 3. 2 / ?
우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모든 것을 끝낸 이후라는 점과 그것에 대한 소감문이라는 점에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대 100km 전술 훈련의 시작은 나흘 전 월요일이었다. 50km의 기억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더욱이 8박 9일이라는
꽤나 긴 휴가를 복귀한 지 채 3일이 되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적잖은 부담감이 느껴진 아침이었다. 첫날은, 두 번째로 같은 길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훑어가며 '이곳에서는 이렇게 가지', '조금 있다가 쉬겠네'라고 되뇌다 보니 어느 순간 구룡포 청소년 수련관에 도달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엔 순서를 따라 텐트를 치고 밥을 먹고 하면 되었으므로 별다른 점은 없었다. 허나 이전과 명백히 다른 무언가가 계속해서 불완전한 압박을 주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다음날에 대한 걱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튿날에 대해서는 모순되게도 느낀 바는 많았지만 글로써 표현이 잘 되진 않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나긴,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상당히 길고 긴 소풍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48km라는 긴 거리를 증명하듯 완연한 봄 날씨가 주는 산뜻한 공기 냄새와 주위를 감싸는 풋풋한 시골 풍경. 그와는 상반되는 사막을 조성하듯 거대한 공사현장을 지나며 분위기를 즐기기만 했을 뿐인데 하루가 지나가는 마술 같은 날이 바로 이틀째의 날이었다. 물론 마냥 즐거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10분간 쉬어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했고 속으로 욕을 한 사바리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부정적 감정을 뛰어넘는 벅참이 내 머릿속 깊이 남아 있기에 지금 이렇게 써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기억에 남길만한 사실은 삼 일째 아침에 비몽사몽 한 청력 너머로 들려온 3.1절 방송이다. 1분 남짓한 짤막한 방송이 꿈을 꾸다 일어난 듯 아련하게 남아있다.
3.1절 당일에는 말로만 듣던 길등재를 올라갔는데 눈이 믿어지지 않는 경악스러운 경사에 짐짓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안개처럼 드리워졌지만 결국 올라가 꿀 같은 휴식을 누렸고 시가지 전투장에 침낭을 펼쳤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같던 오늘. 올바른 쓰임은 아니지만 일장춘몽 같은 삼 일이 지나 마지막 날이 되었고 그간의 거리가 비웃을 길들을 걸어 여기 32대대에 도착하였다.
이 글을 읽을 독자가 본다면 무언가 빠졌다는 생각이 분명 들 것이다. 나 또한 누락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어찌 보자면 소감문을 빌어 가장 하고 싶을 말일 것이다. 이번 행군 중 의무병이란 직책이 해야 할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는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개인적인 피로에 게으르고 나태한 실체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어서 부끄럽기 그지없고 의무중대장님, 실장님, 이상호 수병님의 노고를 잘 알고 있기에 심히 죄송스럽다. 간혹 농담처럼 던져지는 전문하사 제안을 받을 때마다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과연 나에게 그러한 자질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럼없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신이 되도록 더움 힘써야겠다는 반성이 뒤따르는 100km 행군이었다고 마무리를 짓는다.